공남갤 펌








마지막 방영분까지 다 보고 나서 <공주의 남자>로부터, 무엇보다 승유라는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캐릭터로부터 쉽게 마음을 뜰 수 없어 결국 긴 글 하나 쓰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승유빠다. 22회때 세령이랑 헤어지는 부분에서 분기탱천하기도 했지만 승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가 헤어지더라도 세령과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상플도 하나 쓸 만큼 승유라는 캐릭터를 아꼈다.

 

24회분의 TV 드라마 속에서 승유는 참으로 많은 모습을 보여줬다. 별명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꽃도령,완조남, 달조남, 배려남, 허세승유, 다정승유, 다크승유, 검객승유, 짐승승유, 찌질승유, 수염승유, 마지막회에선 필부승유까지 다양하고 변화하는 이미지의 승유를 만들어냈다. 배우 박시후는 이 모든 이미지들을 설득력있고 매력적으로 연기해 내어 승유라는 캐릭터를 더욱더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물론 15-16회등을 넘어가면서 승유가 역사에 질질 끌려가고 남자 주인공다운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원성이 시청자들 사이에 자자했다. 지금도 승유가 친구였던 정종,신면, 그리고 조연에 불과한 송자번처럼 장렬하고 남자답게 죽지 못한 것에 불만 품은 공남팬들이 상당한 듯하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평가로 <공주의 남자>를 떠나보내기 전에 승유라는 캐릭터를 한번 더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승유, 로미오, 그리고 햄릿------------------------------------------------------------------

 

24(마지막회)를 보기 전까지 나는 버릇대로 이런저런 문학의 고전 캐릭터들을 승유에 투영시키면서 승유를 보았다. 계유정난 전의 승유는 확실히 제작팀이 선전했듯이 세익스피어의 로미오를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옮겨온 듯 했다. 사랑에 들뜨고 눈 멀어 원수 집안의 여식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걸고 줄리엣을 사랑한 로미오의 철없음과 순수함이 조선의 귀공자 승유에게 확실히 보였다.

 

계유정난 후 강화로 노비로 끌려가던 중 바다밑으로 가라앉는 호송선에서 조석주라는 귀인 덕분에 살아난 승유는 복수라는 화두로 몸부림치는 햄릿과 비슷하게 변했다. 승유의 최후도 햄릿이랑 비슷할 거라고 예상했다. 햄릿처럼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번민하다가 거사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결국 수양의 무리들이 쳐놓은 덫에 자살특공대처럼 걸어 들어가 장엄한 최후를 맞이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나의 이런 예상은 마지막회의 결말 반전으로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마지막회에서 시력을 잃은 승유는 세령이랑 초야에서 해탈한 듯이 살아가는 필부였다. 야사를 따라간 결말이었고 개연성이 전혀 없는 설정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의외의 해피엔딩이 너무 아리고 슬펐다.종방 이후로 뒤통수 맞은 기분으로 지금까지 왜 승유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슬펐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결국 나의 캐릭터 접근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승유, () 많은 조선의 귀공자---------------------------------------------------------

 

그동안 나는 로미오, 햄릿(심지어 헥토르에 시지푸스까지)등의 고전 캐릭터와 승유를 견주어 보는데 바빠서 뻔히 드러나다시피한 승유 캐릭터의 핵심어(“”)를 너무나 가볍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꽃도령승유든 다크승유든 그를 규정지은 개념은 ()이다. 다시 말해서 승유를 무엇보다 승유답게 하는 어구는 다정승유였던 것이다.

 

승유가 다정한 남자라는 것은 1회만 보아도 쉽게 알수 있다.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의 약값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정종을 자존심 상하지 않게 챙겨주는 이는 다름아닌 승유였다. 어린 조카 아강이는 제 아버지보다 삼촌을 더 따르는 듯 했다. 20회 빙옥관에서 빨래랑 청소로 팔이 아픈 세령에게 말없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조심스럽게 안마해주는 장면은 다정승유의 백미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다정(정이 많다는 것)”은 승유를 최고의 조선 남자로 보이게 한 다른 자질과 종종 부딪쳤다.  그는 무관인 신면보다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복수로 피에 젖은 자신을 짐승이라 부르며 혐오했고 종학 직강이 될 만큼 유교사상에 밝았지만 유교적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 속에 대의를 고민하기 보다는 정겨운 친구들과 어울리는 허물없는 술자리가 더 좋았다. 승유의 정 많음은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우라도잘라야한다라는 흔한 마초적 기대감을 종종 저버리곤 했다.

 

하지만 그와 가까왔던 사람들은 승유의 뛰어난 능력이나 외모가 아니라 그의 정 많고 다사로운 성품을 사랑한 듯 했다. 스승 이개는 세령에게 승유가 하는 짓은 한량 같았지만 성품이 밝고 친구를 누구보다 아꼈다고 했다. 천하의 김종서도 한번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는데 다른 여인과 어찌 평생을 같이 할 수 있겠냐고 하는 철없는(?)막내아들에게 불호령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성격의 승유에게 계유정난은 너무나 잔인한 사건이었다. 가족의 대부분을 잃고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다정승유를 부셔버린 계기는 신면과 세령의 (오해이긴 했지만) 배신이었다. 승유는 진심으로 대했던 신면과 세령이 그를 철저히 속이고 미끼로 이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 혹은 치명적인 오해로 승유다움의 고갱이었던 다정을 내던져 버렸다. 그는 거칠고 메마른 인간(다크승유)이 되었다. 그가 믿는 것은 잘 때도 안고 자는 검 한 자루 뿐인 듯 했다.

 

승유의 이런 변화가 그를 아끼던 이들에겐 충격이라는 사실은 이개 선생의 대사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개 선생은 암살의 현장에서 돌아오는 냉혈한 승유를 대면하고 가슴 아파한다. 강론방에서 세령에게 이개 선생은 예전의 승유가 그립다며 눈물까지 흘린다. 이개 선생이 죽기 전에 승유에게 그의 이름을 다시는 잃지 말라고 한 것은 사육신 등이 미처 다하지 못한 유교적 대의를 다시 세우라는 의미라기 보다 이개 선생이 사랑했던 다정다감하고 밝은 성품의 제자 김승유를 잃지 말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사람에게 있어 의도 충도 중요하지만 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개의 생각은 서로 살리는 친구가 되거라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에서도 볼 수 있다.

 

정()과 살아남은 자의 도리 사이에서-----------------------------------------------

 

그러나 계유정난 후의 피비린내나는 시기에 “서로 살리는 친구가 되거라라는 가르침은 승유에게나 신면에게나 참으로 따르기 힘든 과제였다.

 

계유정난 전의 평화로운(?) 시절에는 다정하면서도 남성적인 승유가 가능했고 감성과 이성, 인정과 명분이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가장 피비린내나는 권력싸움의 틈바구니에서 다정이라는 여성적(?)인 자질이 허용될 순 없었고 모순적이서 매력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왔다. 그 결과 다정승유는 권력을 쥐고 부귀영화를 대대손손 물리고자 혈안이 된 수양의 패거리들에게 연이어 이용당하고 난자당하고 패대기쳐졌다.

 

죽음을 택한 듯 절망한 승유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아버지의 피맺힌 목소리였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아우성에 귀를 닫을 수 없다는 “살아남은 자의 도리였다. 원한을 갚고자 하는 개인적인 복수든 대의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거사이든 성공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본모습을 대호라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감추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어야 했다. 다정함은 평화시엔 그의 남성적 매력을 화사하게 빛나게 하는 파스텔 색감의 도포와 같았지만 복수를 해야만 하는 시점에선 쓸데없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검은 복색으로 나타난 13회의 다크승유는 인정도 동정도 쉬 찾아볼 수 없는 거친 사내였다.

 

그런데 승유에겐 그를 위해선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용감한 세령이 있었다. 더 이상 정 따위엔 휘둘리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승유에게 세령은 너무나도 넘기 힘든 산이었다. 그녀의 굴하지 않는 사랑은 바짝 마른 승유의 가슴을 봄비처럼 적시고 깊숙히 파묻혀 있던 그의 다정한 본성을 다시 싹트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철천지 원수인 수양의 딸이고 아무리 수양에게 반발하고 연을 끊었다고 하나 수양을 죽이는 것은 그녀의 가슴에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승유는 잘 알았다. 그래서 세령을 밀치고 또 밀쳐낸다. 지더라도 냉혈한이 되어서 살아남은 자의 도리를 다해야 하는데 세령은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따뜻한 정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세령의 반대편엔 대의를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승유에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를 다하라고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또 짓누른다. 정과 도리의 공존을 모색하던 승유에게 정종과 단종의 죽음은 결국 살아남은 자의 도리를 택하게 했다. 세령을 떠나보내고 함길도에서 반군을 이끄는 승유는 공주의 남자 24회를 통틀어서 가장 거칠고 어두운 사내였다. 함길도 절제사를 단칼에 죽여버리는 승유는 냉혈함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잠시이기는 했지만 전투의 승리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스포일러처럼 기록되었듯이 이시애의 난은 권모술수에 능한 이들에 의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승유에게 마지막 남은 선택은 수양과 대면해서 그를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 뿐이다. 이것은 상당히 햄릿적인 선택이었고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세령에겐 오필리어와 같은 허망하고 비극적인 죽음밖에 남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햄릿적인 결말에 결정적으로 끼어든 것은 승유의 세령에 대한 정인으로서의 마지막 배려였다. 햄릿은 연인인 오필리어에게 어떤 위로도 하지 않았으며 그녀가 실성해 죽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햄릿만큼 모질지 못한 승유는 그를 위해 슬픈 이별을 자청한 세령을 지아비로서 품어주며 위로했다. 부부로서의 하룻밤은 아이라는 또 다른 인연의 끈을  잉태하고야 말았고...

 

수양이 부처에게 기도(사실은 투정)하는 승법사의 법당에 뛰어들 때 승유의 모습은 너무나 잔인하고 어둡다. 호위군사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승유는 목적을 위해선 인간의 목숨을 파리처럼 취급하는 살인기계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결과 그는 수양과 대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양의 목에 칼을 겨누고 죽이려는 순간 심리전의 고단수 수양은 세령의 임신이라는 히든 카드를 날리고 이는 승유의 칼끝을 흐트려버린다. 

 

암살은 결국 실패하고 붙잡혀 난자당한 승유는 죽음을 기다린다. 이미 각오했던 죽음이었다. 수양을 죽이진 못했지만 살아남은 자로서의 도리는 다했다.하지만 그 죽음은 마음 편안한, 홀가분한 죽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한다. 세령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의 행복한 순간을 안타까이 그려보는 승유는 세령에게 내세에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눈을 감는다. 조선판 햄릿인 다크승유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대호 김종서의 아들로서, 정종의 친구로서  도리를 다한 죽음이었다.

 

주류의 역사에서 벗어난 승유의 3번째 삶----------------------------------------------------

 

그런데 종방을 10분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는 승유의 3번째 삶을  노쇠해진 수양의 눈으로 보게 된다. 승유가 옥사에서 눈을 감은 시점에서 몇년의 세월이 흐른 후 피부병과 회한에 시달리는 수양이 치료를 위해 온양으로 조용히 행궁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수양은 어린 딸아이의 손에 이끌려 걸어오는 눈 먼 승유를 운명처럼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고 평범한 필부의 행색으로 예전의 생기발랄하던 귀공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승유의 표정은 평온하고 수양을 무심히 스쳐가는 모습은 허탈하리 만큼 아름답다.

 

꽃도령이던 때의 화사함과 다크승유 시절의 차가운 매력과는 또 다른 이 엄숙하고 슬픈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도교적인 초탈함을 닮은 승유의 세 번째 삶은 참으로 낯선 것이다. 내가 읽고 접해본 동서고금의 고전들(사실은 대부분 서양고전)을 떠올리며 탈탈 뒤져보았으나 도대체 마땅한 전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후 나는 전형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24회를 다시 복습했다. 결국 승유의 마지막 두 대사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눈을 잃었으나 마음을 되찾았고 복수를 잃었으나 그대를 얻었소.”“그대와 함께 할 것이니 두렵지 않소.”

 

수양에게 마지막으로 칼을 겨누던 날 승유는 수양의 호위무사 임운에 의해 시력을 잃었다. 문학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이 눈을 잃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의 남성성이 상당부분 손상(거세)되었다는 의미이다. 승유는 앞에도 언급했듯이 그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성의 자질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공주의 남자> KBS홈페이지에 그의 완벽에 가까운 남성성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왕을 능가하는 권력가 김종서의 막내아들이라는 배경, 미려한 외모와 강인한 신체조건, 타고난 지적 능력, 명문가답게습관에 밴 학문적 태도와 집중력,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높은 자존감, 사내답게 놀 줄 아는 담대한 배포 등 한마디로 자타공인, 시대의 진정한 귀공자이다.”

 

눈을 잃은 승유에게서 위의 인물소개의 화려한 어구들(권력가, 강인한 신체조건, 자존감, 배포, 귀공자)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옷자락의 움직임마저 아름답던 날렵한 무인으로서의 검술도 더 이상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남성중심의 유교사회가 설파하던 거창한 개념들(절개, 대의,공명, 도리, 충성, 위국)이 더이상 승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조선 최고의 귀공자, 수양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반란군의 지도자는 이름없는 민초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여성의 눈을 빌려 살아야 한다. 산책을 할 때는 딸아이의 손을 잡아야 하고 아내인 세령과 함께 하지 않고는 말도 탈 수가 없다. 완조남과 다크승유가 뿜어내는 남성적인 매력에 반했던 이들에게 눈 먼 승유의 모습은 엄청난 충격 혹은 실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 잃은 승유의 초연한 미소는 그의 남루한 행색마저 아름답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무심히 내뱉는 그대가 함께 할 것이니 두렵지 않소.”라는 마지막 대사는 한 때 세령이 했던 대사(“스승님과 함께 하니 두렵지 않습니다.”)의 반복이다. 승유와 세령의 남녀역학 관계는 얼핏 보면 뒤집힌 듯 하다. 하지만 승유가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우월한 남성, 기죽지 않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 벌어지는 수컷들의 폭력적 역사에서 그가 마침내 자유로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을 볼 수 없는 승유는 폭력적인(그래서 유혹적이기도 했던) 남성성을 벗어버린 새로운 남자이다.

 

계유정난, 단종복위라는 수컷들의 싸움에 내몰렸던 승유는 복수와 도리에 휘몰려 승유를 가장 승유답게 하는 정()을 내던져야만 했지만 이제 눈을 잃음으로서 그는 마음을, ()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눈이 가져다 주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해탈의 경지는 영웅적 최후보다 더욱 얻기 힘든 것이다. 종친으로 기죽어 살 수 없어 수많은 생명을 없앤 수양은 승유가 얻은 이 초월의 세계를 밖에서 들여다 볼 수는 있어도 들어갈 수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는 수양과 다를 바 없는 위치에 있다. 수양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승유가 아니라 바로 현실과 욕망에 치이고 사는 우리들이다.

 

수양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수양의 세상을 벗어난 승유는 더 이상 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무릉도원과 같은 가을 벌판에서 세령과 자유롭게 말을 타는 승유의 모습이 아련하고 슬퍼 보이는 건 그가 주류의 역사에서 잊혀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수양의 세상에 여전히 살고 있는 우리가 그에게서 잊혀졌기 때문이다.

 

 

 락커맘

 DC 공주의 남자 갤러리

 2011.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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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보고 나서야 마지막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ㅠㅠ
다시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ㅠㅠ??
완전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처럼 한회 한회 수많은 생각과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 묘한 덕심을 자극하는 요소까지 있는 드라마는 드문법인데...
이렇게 나를 거의 반 미치게 만들었던 드라마가 또 나올까....
아직도 끝난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일 저녁이면 평소처럼 다음 회를 할것 같아ㅠㅠㅠㅠ
나는 아직도 공남을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잡아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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