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14.08.19

CAST: 정상윤, 박은석, 김소진, 김종구






뮤지컬을 트럭 한대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충격으로 비유한다면, 잘 만든 연극은 누군가 솜이불이 둘러싼 망치로 날 내려치는 기분임. 맞을때는 뭐가뭔지 잘 모르는데 천천히 곱씹을수록 충격이 온다는 느낌의 차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리고 내가 연극을 별로 안보는 편이라 그런가 유독 이렇게 기대없이 갔다가 치이고 올 때가 종종 있는것 같음. 오늘 프라이드도 그런편이었음.


사전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가서 오늘 배우가 누구 나오는지도 제대로 인지 안하고 갔음. 네명 중에 두명은 처음 보는 배우라 더 그랬던듯. 대사량이 많은편이라 배우 둘, 혹은 셋이서 핑퐁하듯이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그래서 초반에는 '극'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나 인터뷰 보는 기분이었음. 씬전환이 별로 없고 한씬당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서 초반 10분동안에는 등장인물들이 하는 얘기를 정말 멍때리고 듣기만 하고 있었는데 1958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교차씬부터 제대로 격침 ㅋㅋㅋㅋㅋㅋㅋㅋ 


두개의 시공간을 다루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같지만 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는 아님. 그렇다고 교차점 하나 없는 완전한 타인은 더더욱 아니라서 나는 그냥 환생체 비스무리한 개념으로 생각하면서 봤음. 자칫하면 두 시공간을 따로 떨어진 두개의 극으로 볼 수도 있었는데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과 성격때문에 그 두개의 차원이 이질감 없이 느껴졌던것 같음. 예를들어 1958년엔 부동산업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불만을 가지고있고, 예술에 대한 조예가 전무하며, 항상 외국으로의 여행을 꿈꾸던 사람인 필립은 2014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되었음.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자,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필립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았던 1958년의 올리버는 2014년에 섹스중독자인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그리고 아름답고 좋은 여자지만 필립과의 문제에서만큼은 늘 불행했던 실비아는 2014년 마리오라는 괜찮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여전히 필립과 올리버 커플로 인해 고통받는중.... 아, 참고로 2014년의 올리버는 어마어마하게 사랑스러움. 올리버가 틈나는대로 깽판을 놔도 필립이 매정하게 정리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때문임ㅠㅠㅠㅠㅠ 실비아도 그래서 한숨 푹푹 쉬면서도 올리버 뒤지다꺼리 해주는거고. 


프라이드는 성소수자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사실 극을 보면 단순히 소수자를 넘어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다루고 있음. 일종의 자존감 회복? 극중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인정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사람을 설득하면서도 결국엔 위로해줌. 자신이 어떤모습이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는게 극의 주제고 그러면서도 그렇지 못해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치유가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 "괜찮아. 다 괜찮아질거야."는 등장인물을 넘어 관객까지 위로하고 포용하는 느낌이었음. 그래서 극장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먹먹하고 아련했던거고ㅠㅠㅠㅠㅠㅠ 


관람등급이 18세미만 금지였던 이유는 장면보다는 대사수위 때문인듯. 1958년에는 ㄱㄱ씬이 있고 2014년에는 욕설과 성적인 묘사가 상당히 직설적으로 표현됨. 배우들 하나같이 씨발소리를 참 찰지게 하시더라. 특히 실비아 언니 존멋bbbbbbb 김소진 배우 연기 정말 잘한다. 대사연기부터 감정연기에 이르기까지 캐릭터 맞춤형으로 완벽히 소화함. 연극은 노래가 있는게 아니라서 대사 제대로 못치면 굉장히 거슬리는데 일단 오늘 캐스트는 다 좋았음. 러닝타임이 3시간에 모션보다는 대화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대사량이 어마어마한데 거의 씹지도 않았고 발음발성도 다들 좋았음. 박은석배우 목소리가 좀 독특했는데 자칫하면 붕 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라는 배역의 특별함에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음ㅋㅋㅋ 정상윤은... 그동안 신작하는거 꼬박 보러다니다가 블메포부터는 안챙겨보게 됬는데 그 이유가 그 매너리즘에 빠진듯한 연기때문이었음. 기본적으로 연기가 괜찮은 편인데 쓰릴미 이후 캐릭터해석이나 느낌이 죄다 거기서 거기인 느낌. 이번에 프라이드 보러가면서도 걱정했는데 역시나 기본 내공은 있는 편이라서 좋았음. 그리고 역시 정상윤은 극적인 연기보다 일상연기를 정말 잘하는 듯. 원래 섬세함이 강점인 배운데 문제는 가끔 격하게 감정 표출해낼때 감정과잉으로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음. but 일상연기는 담백하면서 자연스러움. 캐릭터 소화력도 좋고. 그리고 본래 연극과라 그런가 확실히 연극할때 좀 더 편해보임. 박은석이랑 김종구도 연기 좋았음. 특히 김종구 그 ㅋㅋㅋㅋㅋㅋㅋ 나치코스프레한 남자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엔 뭔가 했는데 존웃이었음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박은석은 몰라 존나 사랑스럽고 귀엽고 혼자 다 해쳐드심ㅠㅠㅠㅠㅠㅠㅠ 그냥 되게 개같은 캐릭이었음 실비아랑 노닥거릴때는 비글비글하고 헤어지자는 필립한테 매달릴때는 비맞은 강아지같고... 


모르겠다 내 기준 제법 긴 연극이었는데 하나도 안지루했고 진짜 존잼이었음. 극장 의자가 딱딱하고 공기가 안좋아서 힘들었던것 빼고는 극자체는 만족스러웠음. 아무래도 치인것 같....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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