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날 얼마동안 그 시공간 안에 가둬놓았는지에 달려있다.
극은 하나의 시공간이다. 영화를 보던 뮤지컬을 보던 콘서트를 보던,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세계고 나는 그 안을 지켜보는 방관자다. 나는 감독과 배우가 만들어 놓은
그 작은 세계 안에 갖혀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것을 즐기곤 한다.
그런 면에서 그래비티는 제법 좋은 작품이었다. 내가 엔딩 크레딧이 거의 다 올라갈때까지
마지 내가 영화와는 반대로 중력에 의해 붙잡혀 있는것처럼 의자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기가 그렇기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주인공이 땅을 박차고 일어났던 것처럼 힘겹게 의자에서 일어나 비척비척 밖으로 걸어나왔다. 피곤함도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사이를 부유하던 내가 창밖을 보았을때 까만 하늘 아래서
차들과 건물들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지금까지의 고요한 시간에서 벗어난
그 광경들이 너무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아직까지 극 안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현실로 돌아오기까진 그 뒤로도 한시간 가량이 걸렸다.
이마트에 가서 과일을 사고, 버스를 타고, 렌즈를 사고 스타킹을 사러 이곳 저곳을
바쁘게 들르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 곳이 텅빈 우주같았다.
그래비티는 텅 빈 우주공간 안에서 미아가 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삶과 죽음의 투쟁이고 중력과 무중력의 싸움이다.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뿐이었던
여자가 진정한 죽음과 맞닥뜨리는 순간 그녀는 결국 싸워야했다.
그 뻥 뚫린 무중력의 공간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했다. 마치 허공을 떠도는 벌레가 된 것마냥
부유하면서도 산소가 부족해 숨이 막히면서도 눈 밑에 보이는 지구는 소름끼치게 아름다웠다.
런던 '내셔널미술관'에 갔을때, 그 드넓고 아름다운 공간을 누비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죽는다면 이곳에서 그림에 파묻혀 죽고싶다고. 이 공간에서라면 미련이 남지 않을것 같다고. 그곳의 우주비행사들도 아마 그런생각을 했을거다. 갠지스 강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죽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진짜 죽음을 아직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경이적인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자연이 우리를 죽이려 하면 우리는 무기력하면서도 끝까지 살기위해 발버둥친다. 사실 진실은, 죽고싶지 않은것이다.
나는 우주를 본 순간, 죽고싶지 않아졌다. 죽는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리 아름다운 죽음이라도, 역시 난 사는게 더 좋다.
중력이 내 몸을 터뜨릴듯 짓누르더라도 두 발로 일어서 걸어나가고 싶다.
텅빈 무중력, 아무것도 없는 그곳은 어쩌면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지옥인지도 모르겠다.
Tip. 무조건 큰 화면으로(IMAX)로 볼것!!!! 작은 화면으로 본다면 이 영화의 1/10도 느끼지 못할것이다.